왜 내 스스로 높인 자존감은 쉽게 무너지는가?

짱구 와르르멘션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 가치가 높다고 여겨라. 스스로 자존감을 높여라.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겨라. 전부 내 스스로가 내 자존감을 높이는 방식이다. 일종의 세뇌지. 그리고 나는 이 방식이 참 쉽게 무너진다고,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끔 눈속임이 쓸모 있을 때가 있긴하다.

우리는 사람과 어울리며 서로가 서로를 평가한다. 이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누군가는 전혀 사랑받지 못한다. 사람은 항상 사랑받아야할 존재? 그런게 어딨냐

다른 사람의 인정과 사랑은 노력해서 얻어내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권. 그건 최소한 나를 짐승이 아닌 사람처럼 대해주겠다는 것이지 귀빈처럼 대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시간은 어린아이때 뿐이다. 그 이후로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책무를 다 해야한다.

너무 가혹한 세상이라고? 역할을 못하게 되면 버려지는 동물들 무리보다는 낫잖아. 인간은 동물과 달리 지식과 지혜, 자산을 소유함으로써 사회내에서 본인의 유용함을 증명할 수 있다. 이것이 증명되면 사람들은 이 사람을 찾게 되고, 존중과 존경 사랑으로 대우를 받는다. 반대로 증명하지 못하면 전혀 대우받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내 스스로 높인 자존감이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나의 유용함을 전혀 증명하지 못하면서, 능력도 없으면서 내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면 뭐하냐? 사회에 속하게되면 곧바로 혹독한 평가가 이어지고 그 평가를 듣는 즉시 내 세뇌는 깨지는데.

내가 내 스스로를 평가하는 방식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쉽사리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나마 객관성 높게 판단하는 방법은 타인을 평가하고, 그 타인과 내 수준을 비교해서 내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고, 사람들도 내 평가와 얼핏 비슷하게 나를 대우해준다.

하지만 내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과정 속에는 이런 비교가 빠져있다. 그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세뇌할 뿐이다. 그러니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때 내가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 대우를 못 받고 세뇌가 곧바로 깨지지. 여기서 세뇌가 곧바로 깨지지 않으면 더 큰 문제다. 무조건적으로 날 사랑해주지 않는 타인을 깎아내리고 헐뜯는다. 상대가 잘못됐다고 말이다. 잘못된 것은 나에 대한 내 평가인데 말이다.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사랑받아야한다라…나부터가 그러고 있을까? 땡볕에서 더워죽겠는데 누군가 부딪히면 항상 친절히 대하고, 내 기준 불쾌한 사람을 매번 사랑으로 대하고 그러고 있니? 누군가를 대우해준다는 것은 큰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작업인데 매번 그러긴 힘들겠지. 그렇기에 사랑은 외모를 가꾸는 노력, 실력을 높이려는 노력, 돈을 많이 벌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고 싶으면 일단 사회적으로 내가 필요하다는 것부터 입증하자. 이런 과정이 없다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즉시 내가 쌓아온 자존감은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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