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이해는 있어도 일방적 이해는 없다

상호 이해라는 말은 있어도 일방적 이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해란 것이 그렇다. 내가 남을 바라볼 때 이해가 안 된다면, 상대방 또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나는 정상, 너는 비정상’이란 마인드로 사는 분들이 꽤 있다.

살다보면 이런 일을 많이 겪을 것이다. 사람 혹은 사람들이 나를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

누군가는 나를 ‘노잼 인생!’이라 하고, 다른 누군가는 나를 ‘왜 그렇게까지 사냐?’라고 평가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면 나 또한 마음 속 깊은 곳의 의문이 올라온다.

무의미하게 회사에서 시간만 떼우는 인생이 더 노잼 아닌가?

지금 열심히 놀고 있는 본인의 미래를 더 걱정해야하는거 아닌가?

일방적 이해를 하고 있다는 착각의 예시

즐거운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비싼 돈을 내며 서울을 사는 A와 더 많은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저렴한 지방에 사는 B가 있다고 하자. A가 B의 인생을 ‘젊을 때 놀아야지 왜 지방에 사는거야?’라며 의문을 갖는다면, B 또한 A 인생에 비슷한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은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A 혹은 B는 ‘내가 정상인걸 상대방도 알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전제로 살아간다.

상호 이해의 예시

반면 A가 B의 인생을 이해한다면 B 또한 A를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A가 B를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 과정에서 A와 B는 선택의 이유를 각각 설명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납득하거나 이해라는 단계에 도달했을 것이다. 학습 능력까지 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만한 점을 취해 본인 인생에 적용도 해보겠지.

최소한의 대화조차 없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인생 또한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 안 되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요즘 대화하다보면 ‘내 인생은 정상인데, 너의 인생은 비정상이야’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좀 있다.

이렇게 살아보자

그런 마인드는 솔직히 인생에 큰 도움 안 된다. 그것보다는 대화를 하면서 ‘왜 저렇게 인생을 살까? 어떤 미래를 바라보고 있을까? 무엇을 목표로 살고 있는걸까? 내 인생에 적용하면 좋을만한 점, 배울만한 점이 있을까?’라는 태도가 인생에 더 도움 된다. 적어도 무작정 다른 사람의 인생을 비정상이라고 여기는 것보다는 챙겨가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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